폭스라이프 인터넷 자막 고수 선발 대회?



폭스라이프 채널에서 인터넷 자막고수를 뽑고 있습니다. 현재 20명이 예선 심사로 올라왔고 여기서 투표와 내부평가로 뽑힌 7명이 '커플 수칙'이란 시트콤을 1편부터 7편까지 한 편씩 번역하면 이 작품이 방송됩니다. 방송 후 투표와 내부 평가로 뽑힌 최후의 한 명이 'til Death'라는 시트콤 한 시즌의 번역 기회를 갖게 됩니다.

영상 번역 작가에 뜻이 있는 재야의 실력자들에겐 참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봅니다. 저도 어떤 분이 뽑힐지 굉장히 궁금하고 '커플 수칙' 방송도 지켜 볼 생각입니다. 재야의 고수들 실력도 궁금하고 말이죠. ㅎㅎ 폭스라이프에서 이 이벤트를 기획한 분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주 노련하신 거 같습니다. '시청률+게시판 활성화+잠재력 있는 작가 발굴+채널에 대한 관심' 을 한 큐에 뽑을 수 있는 작전이거든요. 단순히 지원-검토-발표가 아니라 방송을 통한 네티즌 투표라니... ㅎㅎㅎ 진짜 참신하고 대단한 기획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네요.

BUT, 사실 이게 현직 작가들의 시선으론 그리 곱게 보기가 힘듭니다.

하나, 실제로 번역을 업으로 하고 있는 작가들도 이런 기회는 쉽게 갖지 못하거든요. 그렇다고 인터넷 자막고수를 뽑는데 나가 봐야 어느 커뮤니티에서 밀어 줄 것도 아니고 말이죠. 저는 드라마 한 시즌 해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1년 반이 넘도록 드라마는 구경도 못 했었답니다.

둘, '현재 작업 중인 번역 작가들은 모두 참신함이 떨어져서 새로운 감각을 가진 재야고수를 뽑는다.' 이런 인상을 은연중에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셋, 솔직히 대부분의 프로 작가들은 인터넷 자막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7명이 뽑혀서 각각 한 편씩 작업을 한다고 해도 정식 감수를 거쳐 나가는 자막은 현재 작업 중인 작가들과 다를 게 없을 겁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실력이 떨어지면 떨어졌지 더 나은 자막이 나오긴 쉽지 않을 겁니다. 처음 프로 작업을 하면서 인터넷에서 허용되던 자유가 구속된 상태에서도 현직 작가보다 좋은 실력을 보인다면 정말로 감이 훌륭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쪽에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되겠죠.

그런데 여기서 의문 하나.
 - 왜 인터넷 자막은 더 참신하다고 느껴지는 걸까?

실제 방송 자막보다 표현의 자유가 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은어, 속어, 비어도 마음껏 쓰고 유행어도 마음대로 쓰고 자막 길이도 꽤 긴 편입니다. 가끔 주석을 쓰기도 합니다. 이렇게 제약이 없는 환경에서는 참신한 자막이 나올 확률도 커진다고 봅니다. 그럼 현직 작가들에게 저런 자유를 주면 전부 참신한 자막이 나올까요? 솔직히 그렇진 않습니다. 여기서도 쓸 수 있는 사람은 쓰고 못 쓸 사람은 못 쓰겠죠.

의문 둘.
- 왜 사람들은 케이블, 극장 자막을 욕하고 인터넷 자막에겐 엄지를 치켜드는가?

이 부분은 다음 의문과도 관련이 있는데 제가 지금도 굉장히 깊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인터넷 자막 제작자와 케이블 번역 작가가 똑같은 작품을 번역했다고 했을 때 케이블 작가가 욕을 더 많이 먹습니다. ㅎㅎㅎ 왜 그럴까요? 여긴 여러 상황이 있습니다. 대개 케이블에선 인터넷보다 늦게 방송되기 때문에 케이블 방송이 처음에 본 인터넷 자막 제작자의 인물 설정(존대나 어투, 호칭 문제)과 달라서 갑자기 보기에 어색한 경우도 있고 팍팍 치고 나가야 하는 부분에서 방송의 한계 때문에 인터넷 자막보다 자극적인 자막을 쓸 수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합니다.

의문 셋.
- 시청자들은 인터넷 자막이 더 좋다고 하는데 그럼 '좋은 자막'이란 무엇일까?

이걸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 옵니다. 저도 생각할 때마다 정리가 되지 않는 문제거든요. 예를 하나 들어 볼게요.

현직 번역 작가 A의 번역이 있다고 해 보죠. 주위 번역가들이나 관계자들은 그 번역을 굉장히 잘한 번역이라고 아주 마음에 들어 합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보기엔 정말 마음에 안 들고 인터넷 자막이 더 낫다고 합니다. 분명히 방송 현실이 허락하는 선에서 봤을 땐 자막의 포맷이나 표현 등 깔끔하고 훌륭한 자막입니다. 전문가들이 봤을 때 누구나 인정할 좋은 자막이라는 얘기죠. 그런데도 시청자들은 맘에 들어하지 않습니다.

주위에서 이런 상황을 꽤 많이 봅니다. 분명히 이쪽 분야에서 일하는 시각에서 봤을 땐 흠잡을 것 없이 훌륭한 자막인데도 욕을 엄청나게 먹는 상황.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현직 번역 작가들과 채널 혹은 배급사 관계자들이 좋은 자막이라고 인정하면 좋은 자막일까?
아니면 시청자들이 좋은 자막이라고 인정해야 좋은 자막일까?

저도 현직 번역 작가지만 솔직히 시청자들의 손을 들고 싶은 생각입니다. 정말 진정한 '좋은 자막'은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자막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마냥 '시청자들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전문가가 보기엔 훌륭한 자막이다'라고 말하기엔 저도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결국 그 작품을 보는 건 시청자들이거든요.

그래서 폭스라이프의 이번 이벤트를 긍정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케이블 자막의 '참신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현재 방송 자막의 한계에 저들을 가두면 인터넷 자막에서와 같은 참신함은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럭저럭 케이블 자막 포맷을 알게 된 번역 작가 1인의 탄생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얘기죠. 물론 현재 방송에서 규정처럼 정해 둔 포맷도 그 나름의 일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방송에서 허용하는 자막 글자 수나 Duration은 방송계에서 긴 경험을 통해 최적화된 포맷입니다. 그 긴 실험의 결과를 뒤엎는 건 멍청한 시도죠. 

참신한 자막을 보고 싶다면

케이블에서도 참신한 자막을 보고 싶다면 작가들에게 더 많은 표현의 여지를 줘야 합니다. 인증된 하드웨어(자막 포맷)는 그대로 두되 소프트웨어(표현 - 은어, 비어, 속어)의 응용 한계를 넓히는 게 훨씬 좋은 방식이라고 봅니다. 복서의 한 쪽 팔을 묶어 두면 시합이 끝날 때까지 원투는 못 날립니다. 공격 루트도 방식도 단조로워지겠죠. 표현 한계를 그대로 두고 인터넷 자막 고수를 뽑아 번역 작업을 시킨다는 건 양팔이 자유로운 복서를 데려다 또 한쪽 팔을 묶는 것밖에 안 됩니다.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주특기였던 복서의 왼쪽팔을 묶어 버리면 진짜 평범하디 평범한 복서가 되겠죠? 원원원원이 아니라 원투쓰리포 등등등 다양한 컴비네이션을 던질 수 있게 양팔을 자유롭게 풀어 줘야 합니다.

번역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자부심을 느끼고 더 노력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지금 케이블에서는 번역 작가들의 이름을 크레딧에 띄워 주지 않습니다. 몇몇 채널은 그렇게 해 주는 채널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렇지 않습니다. 위 이벤트에서도 보이지만 무슨 작품을 누가 번역했는지 네티즌들이 다 압니다. 허나 케이블은 아무도 모르죠. 저 백수인지 아는 친척 분들도 계십니다 -_-;; 최소한 자기 작품에 자부심 가지고 더 애정을 쏟을 수 있게 크레딧에 이름은 넣어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아마추어 번역가들도 프로 번역 작가와 같은 제약을 가진 아레나에 들어왔습니다. 마냥 주먹을 맞대기도 불쾌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실력으로 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는 게 중요합니다. 아마추어의 링과 프로의 링은 분명히 다릅니다. 재능만으로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죠. 허나 당장은 관록으로 누를 수 있을지 몰라도 재능이 있는 아마추어라면 조만간 프로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게 될 겁니다. 프로들도 방심하고 있으면 안 되겠죠. 아무튼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진 건 분명합니다. 우승자가 누가 될지 정말 궁금하네요. 우승하고도 계속 이쪽 길을 걷게 될지 만만치 않다고 느끼고 그만둘지는 모르겠습니다. 계속 걷게 된다면 어떤 루트로든 제 얼굴을 보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ㅎㅎ

우승자는 'til Death 한 시즌을 번역하게 된다니까 대한민국 유일의 현직 영상 번역 작가 모임 '두줄의 승부사'의 가입 조건을 충족합니다. 누가 되든 제가 접촉해 볼 생각입니다. 술 한잔 해 보고 싶잖아요 ㅎㅎ 기미갤과 네이트 숫자동 두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인 분들이니 접촉은 쉬울 겁니다. 그 길을 업으로 삼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미래의 동료가 될지도 모를 우승자 분의 건투를 빕니다.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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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왕!
    방금 가서 뽑힌 사람들 자막 몇 개 읽어봤는데...
    감수하라고 나 주면 바로 빠꾸시켜서 재번역 시킬 번역도 꽤 있는걸 ㅡ,-;;

    아놔, 우리한테도 그냥 저렇게 번역해도 된다고 해주덩가 ㅎㅎ

    암튼, 이거 누구 하나 뽑혀서 정식 방송되면 감수는 X빌에서 할라나...
    그럼 여기 1등 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을 느끼다가
    첫 편 감수받고 피디들한테 폭풍까임 좀 당해봐야
    "아~ 그냥 인터넷에서 놀아야겠다~" 할끼야 ㅡ,-

    • 그게 문제지 ㅎㅎ

      아마 감수하는 과정에서 다 뜯어 고치게 될 텐데.

      근데 몇 명 보니까 조금만 교육해도

      적응할 거 같은 사람들도 있더라고.

      암튼 아마 X빌에서 하긴 할 거 같은데

      그쪽도 진짜 개고생이다.

  2. 20명들 자막을 대충 봤는데... 쫑.나.겠.다.. 느낌표 세 개 이상 !!!! 물결 표시~~~~~~~~~ 요런 표현도 자유롭게 쓰는 인터넷 자막.. 우리도 그렇게 해 달라구. 그럼 참신하게 번역해 줄 테니. ㅎㅎ
    이게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번역가들한테는 좀 더 참신한 표현을 쓸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인터넷 자막 만드는 아마추어들한테는 케이블 자막의 특성과 한계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면 좋겠지만... 글쎄. 암튼 나도 과정을 다 지켜볼 생각. 최후의 1인이 누가 될지 너무 궁금함.

  3. 저 얘기는 '두줄'에서 봤는데 대충 예상대로인 듯 하네요.
    근데, 저는 다큐번역을 해서 그런지 PD를 본 적도 없고..(방송사가 아니니까)
    까주지도 않더군요. 그리 잘 된 번역은 아닌 듯 한디.. ^^;;

    작평님은 아마 내일 뵙게 될 텐데, 솔직히 '두줄'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뵐 기회가
    없었을 것 같아서 제가 진짜 영상번역을 하는 건지 좀 헷갈리기도(?) 합니다. ^^;;

  4. 뭐 폭스라이프 측에서도 진짜 인터넷자막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이런 이벤트를 시작했겠습니까?
    딱 한명, 그것도 퀄리티를 위주로 한 심사가 아닌 투표, 댓글, 시청률인데
    방송사 홍보 목적이 90%이상이라고 봐야죠.

    저도 제출용 자막에는 글자수도 나름 신경쓴다고 썼는데
    아직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누가 되더라도, 기존 영상번역 하시는 분들께서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슴다!^^

    • 이번 이벤트에 참여하신 분이군요. ㅎㅎ

      이제 슬슬 투표도 끝나가는데

      꼭 7인 안에 붙어서 좋은 경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5. 이런 이벤트가 있었군요

    번역 일을 업으로 삼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지만
    그래도 자막 몇개 만들다 보니 제 자막이 과연 남들이 보기엔 어떤 수준일지
    궁금했고 그걸 검증해 볼 좋은 기회였던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라고는 해도 제가 제작했던건 원체
    마이너 드라마라 폭풍 탈락 했을 듯 싶긴 합니다 ( '-'

    인터넷 번역 작가를 너무 미워하진 마세요
    그래도 프로 작가들의 애환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보기만 하는 시청자들보단 한번이라도 글자수와 국어 표현에 관해 고민해 본
    인터넷 자막 제작자들일테니까요 =)

    • SVU 시리즈면 마이너 드라마는 아니죠 ㅎㅎㅎ

      저도 시즌8 했었는데 말 오지게 많죠? -_-;;

      자주 놀러 오세요~